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유례 없는 '수장과 사령탑이 동시에 부재한' 초유의 사태 속에서 재건을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그러자 최근 파울루 벤투(57), 거스 포옛(59) 등 한국 축구와 인연을 맺었던 굵직한 외국인 지도자들의 이름이 차기 사령탑 후보군으로 거론되며 이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현재 직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구를 앉힐 것인가'라는 인물론에 앞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축구를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거시적인 철학 확립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고 새로운 출발선에 선 지금이다. 축구계 안팎에서는 화려한 지도자 이름값에 매몰되기보다 더 근본적인 '한국 축구의 지향점'을 먼저 세워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박문성 축구 해설위원은 최근 여러 인터뷰를 통해 "논의의 순서가 명확해야 한다"며 "한국 축구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과 방향성이 설정된 후에 그 스타일에 가장 부합하는 지도자를 찾는 것이 상식적이고 발전적인 순서"라고 짚었다.

한국 축구가 제대로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연령별 대표팀부터 성인 대표팀까지 관통하는 뚜렷한 '정체성'이 확립돼야 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중심이 없으면 사령탑이 바뀔 때마다 팀의 색깔 전체가 흔들리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까운 일본 축구의 경우 브라질 축구의 영향을 받아 패스 위주의 공격적인 빌드업 축구라는 명확한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큰 틀의 철학이 확고하다 보니 어떤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도 고유의 색깔 안에서 단계적인 전진과 스텝업을 이뤄내는 모습이다.
그에 반해 한국 축구는 2022 카타르 월드컵 당시 벤투 감독 체제에서 보여준 주도적인 축구 가능성을 경험하고도, 이후 전술적 연속성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정립되는 듯했던 색깔이 위르겐 클린스만, 홍명보 체제를 거치며 다시 희미해졌다.
그 사이 한국 축구는 퇴보하는 모습이다. 손흥민(34, LAFC), 이강인(25, 파리 생제르맹), 김민재(30, 바이에른 뮌헨) 등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황금세대'를 제대로 극대화하지도 못했다.

결국 주먹구구식 사령탑 교체 탓에 황금세대를 허송세월하게 만들었다. 이곳저곳에서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다.
당연히 새로운 사령탑을 모셔오는 일은 대중의 이목을 끄는 흥미로운 주제다. 그러나 인물 중심의 단기 처방에만 기대다 보면 시스템을 개혁하고 토대를 다질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을 놓치기 쉽다. 화려한 포장지보다 단단한 알맹이를 채울 때라는 것이다.
진정한 재건을 원한다면 유소년 단계에서부터 성인 국가대표팀까지 하나의 통일된 축구 철학이 이어져야 한다. 우리 역시 일본의 예처럼 한국 선수들의 신체 조건과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모델을 정립하는 숙의 과정이 우선시 돼야 한다.

갈 길을 명확히 설계해 두고 공정하고 투명한 운동장을 만들어 놓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 축구의 비전에 공감하는 경쟁력 있는 지도자들은 자연스럽게 모여들게 되어 있다고 본다.
현재 박지성, 이영표, 박주호 등 풍부한 경험을 지닌 선수 출신들이 주축이 된 'K-축구혁신위원회'가 출범해 한국 축구의 체질 개선을 위한 쇄신 작업에 돌입했다.
지금 시급한 것은 특정 감독의 이름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적 개선과 공정한 절차를 통해 '누가 오더라도 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평평하고 튼튼한 운동장'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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