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괜찮은 성적표를 집어든 미국이 자국의 축구 시스템을 돌아봤다.
미국 'ESPN'은 8일(이하 한국시간) "미국이 유소년 축구 시스템을 고치지 않는 한 월드컵 패배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지난 6일 시애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16강전에서 벨기에에 1-4로 완패했다. 홈 이점을 안고도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로써 미국 남자 축구대표팀은 월드컵 6개 대회 연속 16강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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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축구가 큰 무대에서 좌절할 때마다 반복되는 변명이 있다. "미국 최고의 운동능력을 가진 선수들은 축구가 아니라 다른 종목을 한다"는 말이다. 르브론 제임스 같은 선수가 축구를 했다면 달랐을 것이라는 식이다.
ESPN은 이를 낡은 변명이라고 잘라 말했다. 매체는 "축구가 미국에서 여러 스포츠와 경쟁해야 하는 것은 맞다. 다만 이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마찬가지다. 미국이 벨기에에 1-4로 패하며 6개 대회 연속 16강을 넘지 못한 이유가 운동능력 부족은 아니었다"라고 짚었다.
미국은 인구 약 3억 5,000만 명의 거대 국가다. FIFA 규정상 다양한 시민권 경로를 통해 대표팀 자원도 넓게 확보할 수 있다. 벨기에 인구는 약 1,200만 명이다. 노르웨이는 약 560만 명으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규모에 불과하다. 노르웨이는 동계올림픽 메달 경쟁까지 벌이는 스포츠 강국이면서도 이번 월드컵 8강에 올랐다.
ESPN은 "미국에는 충분한 운동선수가 있다. 필요한 기술을 가진 선수도 충분하다. 문제는 경쟁자가 충분하냐는 것"이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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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단지 이기고 싶은 선수가 아니라 반드시 이겨야 하는 선수가 충분한가. 미켈롭 울트라 광고에 출연하는 것 이상을 원하는 선수들이 있는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핵심은 유소년 시스템이다. ESPN은 미국 유소년 축구의 중심에 있는 '트래블 사커'와 비용 부담 구조를 문제로 봤다. 미국의 많은 어린 선수들은 점점 더 많은 돈을 내야 하는 '페이 투 플레이(pay-to-play)' 환경에서 축구를 시작한다.
벨기에는 미국보다 기술적으로만 앞선 것이 아니었다. ESPN은 "벨기에는 미국을 압도했을 뿐 아니라 더 많이 뛰고 더 치열하게 싸웠다. 육체적으로도 강했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더 강했다. 미국은 너무 자주 부드럽고 약하며 압도당한 것처럼 보였다"라고 평가했다.
미국 여자대표팀의 전설 칼리 로이드도 비슷하게 말했다. 두 차례 월드컵 우승과 두 차례 올림픽 금메달을 이끌었던 로이드는 폭스 스포츠에서 "미국은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 이미 진 것처럼 보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작부터 쫓기고, 주저하고, 겁먹은 모습이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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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N은 "미국은 변명할 수 없는 조건을 갖췄다. 시애틀의 뜨거운 홈 관중, 미국 전역의 응원, 백악관의 관심까지 받았다. 잉글랜드가 아스테카 원정을 떠난 것과는 달랐다. 벨기에는 강팀이지만 프랑스나 스페인은 아니었다"라고 지었다.
그러면서 "미국에는 큰 무대였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무대였다. 감당하지 못할 무대가 아니어야 했다. 그런데 감당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축구협회도 육성 구조를 바꾸려 노력해왔다. MLS 아카데미는 유럽 클럽처럼 우수 선수들에게 무료 훈련 환경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다만 MLS 넥스트는 10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전까지 많은 아이들이 축구를 시작하는 주된 경로는 여전히 상업화된 '트래블 사커'다.
트래블 사커는 사업이다. 고객이 있는 교외 지역 아이들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농촌이나 도심 지역 아이들은 구조적으로 밀려나기 쉽다. 부모는 여행비, 등록비, 훈련비로 1년에 2만 달러 이상을 부담하기도 한다. 여기에 주말마다 몇 개 주를 건너 '엘리트 쇼케이스'에 아이를 데려다줘야 한다. 때로는 같은 동네 팀을 상대하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한다.
ESPN은 "트래블 스포츠는 400억 달러(약 61조 원)가 넘는 산업이 됐다. 점점 더 중산층 상위 계층과 부유층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매년 가족들에게 더 많은 돈을 짜내는 것이 목표가 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런 시스템이 월드컵에서 필요한 투지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질문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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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문제는 단순히 재능을 잃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ESPN은 이 구조가 U-8, U-11 같은 어린 나이부터 '우승'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게 만든다고 봤다. 클럽은 더 많은 아이를 등록시키고 더 많은 팀을 운영하기 위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창의적이거나 경쟁심이 강한 선수보다, 그 나이대에서 가장 크고 빠른 선수가 우선된다.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이 B팀, C팀, E팀에서 사라지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훈련 강도도 문제다. 어린 선수와 부모가 '고객'인 구조에서 코치는 얼마나 강하게 지도할 수 있을까. 선수를 무너뜨린 뒤 다시 세우는 과정, 진짜 역경을 주는 과정, 특히 정신적인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과정이 가능하냐는 의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수는 시즌이 끝난 뒤, 혹은 그보다 빨리 다른 클럽으로 옮기면 된다. 클럽은 가진 선수를 키우기보다 새 재능을 영입하려 한다. ESPN은 이를 "평범함의 순환"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미국 대표팀의 월드컵도 트래블 사커 스타일과 닮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재능 우위가 있을 때는 빛났고, 이른 찬사를 즐겼다. 진짜 상대를 만나자 무너졌다. ESPN은 "오렌지 조각을 나눠주고 SUV에 짐을 실어 일요일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라고 비꼬았다.
트래블 스포츠에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고 보람 있을 수 있다. 자신감을 키우고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챔피언을 만드는 어려운 과정이 거의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ESPN은 "그 결과 여름 군인과 햇살 애국자로 이뤄진 월드컵 팀이 나온다"라고 비판했다. 잘 적응한 3부 대학 선수, 미래의 회계사와 변호사, 가끔 유럽 프로 선수를 만들 수는 있어도, 월드컵에서 필요한 결연함을 갖춘 팀 전체를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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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국 대표팀은 오히려 과거보다 후퇴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클라우디오 레이나, 랜던 도노반, 클린트 뎀프시 등이 이끌던 과거 대표팀에는 뚜렷한 심장이 있었다. 이번 팀은 더 재능 있어 보였지만, 더 멀리 뒤처진 모습이었다.
ESPN은 마지막으로 질문을 남겼다. 유소년 축구가 더 비싸지고, 더 배타적이 되고, 실제 코칭보다 돈을 받고 달래는 구조에 가까워진다면 미국 축구는 어디로 가게 될까.
미국은 2026 월드컵을 공동 개최했다. 홈에서 다시 한 번 16강 벽 앞에 멈췄다. 그간 미국이 축구계에서 보여준 '이미지'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그러나 ESPN은 "문제는 한 경기 패배가 아니다. 미국 축구가 다음 월드컵에서도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자국 축구 시스템을 돌아봤다. /reccos23@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