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생각하니..." '늦게 핀 꽃' 김상겸의 뜨거운 눈물...'4수 끝' 기적의 은메달 "스노보드란 내 인생이다"[2026 동계올림픽]
OSEN 고성환 기자
발행 2026.02.09 07: 18

'늦게 핀 꽃' 김상겸(37, 하이원)이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3전 4기'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건 그가 아내를 떠올리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김상겸은 8일(한국시간) 이탈리아 손드리오주의 리비뇨 스노 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벤야민 카를(오스트리아)에 0.19초 차로 패하며 최종 2위를 기록했다.
평행대회전은 선수 두 명이 블루코스와 레드코스에서 나란히 출발해 피니시 라인을 먼저 통과하는 선수가 승리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예선에서는 두 코스를 번갈아 주행한 뒤 합산 기록으로 순위를 따진다. 여기서 상위 16명이 결선에 올라 토너먼트 방식으로 최종 순위를 가리게 된다. 

그런 만큼 언제 어디서 이변이 일어날지 모르는 종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밀라노에서는 김상겸이 돌풍의 주인공이 됐다. 사실 그는 유력한 메달 획득 후보로 기대받은 선수는 아니었다. 김상겸은 2014 소치 올림픽에서 17위로 예선 탈락, 2018 평창 대회 16강 탈락, 2022 베이징 대회 24위로 예선 탈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선 달랐다. 김상겸은 이변에 이변을 거듭하며 자신의 4번째 도전에서 기어코 시상대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는 금메달리스트 카를, 동메달리스트 테르벨 잠피로프(불가리아) 함께 손을 흔들며 입장했다.
김상겸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한국에서 지켜보고 있을 팬들과 가족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다가오는 설 명절에 맞춰 선보인 센스만점 세리머니였다. 그런 뒤 김상겸은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고, 은메달을 목에 건 뒤 함께 받은 기념인형을 쥐고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그는 카를, 잠피로프와 다같이 메달을 깨물며 기념사진도 남겼다. 
김상겸의 이번 은메달은 2018 평창 대회에서 '배추보이' 이상호가 따냈던 은메달 이후 한국 설상 역사상 두 번째 메달이다. 또한 그는 동·하계를 통틀어 한국의 통산 올림픽 400번째 메달 주인공이 되는 영예까지 안았다. 이전까지 한국은 하계올림픽에서 320개(금 109개, 은 100개, 동 111개), 동계올림픽에서 79개(금 33개, 은 30개, 동 16개)의 메달을 획득하고 있었다.
게다가 김상겸의 은메달은 한국의 이번 대회 1호 메달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탈리아 땅에서 아직 메달을 수확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수단 맏형인 김상겸이 가장 먼저 포디움에 올라서면서 메달 레이스의 스타트를 끊게 됐다. 한국 스포츠사에 남을 쾌거다.
시작부터 쉽지만은 않았다. 김상겸은 1차 예선에서 18위로 탈락 위기에 놓였으나 2차 예선에서 순위를 끌어 올리며 살아남았다. 그는 1·2차 합계 1분27초18를 기록하며 8위를 차지, 결선 토너먼트에 올랐다. 
16강에선 행운까지 따랐다. 김상겸은 3조에서 슬로베니아의 잔 코시르와 16강전을 치렀다. 레이스 도중 코시르가 넘어지면서 43초05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김상겸이 8강행의 주인공이 됐다. 
8강에서도 행운의 여신이 김상겸에게 미소를 지어줬다. 그가 상대한 로날드 피슈날러(이탈리아)는 예선에서 합계 1분25초13로 1위를 기록하며 결선에 오른 강자다. 하지만 피슈날러가 흔들리면서 완주를 포기했고, 43.24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김상겸이 4강 진출의 주인공이 됐다. 해설진도 "이변에 이변"이라고 말할 정도로 기분 좋은 반전이었다.
그리고 김상겸은 4강에서도 승리하며 생애 첫 올림픽 메달을 확보했다. 또 블루코스를 탄 그는 잠피로프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초반엔 다소 뒤처졌지만, 중반에 속도를 내면서 역전했고, 그대로 먼저 결승선에 들어왔다. 최종 기록은 43초37였다. 잠피로프는 막판에 살짝 삐끗하면서 0.23초 늦게 들어왔다.
한국 설상 종목 최초의 금메달까지 남은 건 단 1승. 그러나 상대는 세계 최강자 중 한 명인 1985년생 베테랑 카를이었다. 그는 이미 올림픽에서 메달을 3개나 손에 넣은 전설(2010 밴쿠버 은메달, 2014 소치 동메달, 2022 베이징 금메달)이자 '디펜딩 챔피언'이었다.
결승에서도 블루코스를 탄 김상겸은 좋은 스타트를 선보였고, 1차 측정 구간을 0.17초 빨리 통과했다. 다만 뒤이어 삐끗하는 아쉬운 실수가 나오면서 카를에게 뒤처졌다. 김상겸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속도를 내며 역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마지막 구간에서 카를에게 재역전을 허용하며 0.19초 늦게 피니시 라인에 들어왔다.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카를은 웃통을 벗고 눈 위에 몸을 던지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은메달이 확정된 김상겸은 자못 아쉬운 듯 환하게 웃진 못했다. 
그럼에도 기대 이상의 성적임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김상겸은 이전까지 세계선수권대회와 3차례 올림픽에서 한 번도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지만, 4번째 올림픽 도전에서 기어코 일을 내는 데 성공했다. '3전 4기' 끝에 이룬 쾌거였다.
라이딩을 마친 김상겸은 국내 중계사 'JTBC'와 인터뷰에서 "메달을 바라보고 최선을 다했는데 좋은 결과가 따라줘서 너무 행복하다"며 "(한국의) 400번째 메달인지도 몰랐다. 이번이 4번째 올림픽인데 메달 따서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승리 후 포효하기도 했던 김상겸. 그는 1차 예선에서 실수가 있어서 부담이 있었는데 2차 에선을 잘 타고 본선 경기 운영을 잘했던 것 같다. 그래서 메달 따지 않았나 싶다. 기분은 너무 좋다. 포효한 건 솔직히 내가 울까봐 포효한 것도 있다. 기쁜 것도 있다"라고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뒤집기로 값진 은메달을 따낸 김상겸. 그는 "8강에서 1등 선수와 붙었을 때 가장 부담이 됐다. 내 경기력과 실력을 믿고 한번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운영하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운도 좀 따라줬다. 4강부터는 실수를 줄이고, 속도를 붙이려고 노력했다. 그 와중에 상대 선수들이 실수를 해줬다. 운이 많이 따라줬다"고 말했다.
뜨거운 눈물도 흘렸다. 김상겸은 "일단 아내가 제일...아내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온다. 기다려줘서 너무 고맙다. 가족들한테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라며 눈시울을 붉힌 뒤 "가족들이 힘을 많이 실어줬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경기 운영을 끝까지 할 수 있었다. 메달은 일단 엄마에게 걸어드리고, 그다음에 아빠와 아내에게 걸어주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오늘은 90점 이상의 라이딩을 한 거 같다"라고 스스로 평가한 김상겸. 그는 함께 출전했지만, 아쉽게 16강 탈락한 동생 이상호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이상호는 예선을 6위로 통과했으나 16강에서 베테랑 안드레아스 프로메거에게 0.17초 뒤져 탈락하고 말았다.
김상겸은 "팀 내에서 경쟁하면서 좋은 시너지를 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상호에게 너무 고맙다. 초반에 상호가 성적을 많이 내주고, 한국을 많이 알렸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라고 전했다.
힘들었던 시간을 이겨내고 꿈을 이룬 김상겸이다. 그는 "힘든 순간마다 당연히 가족들이 있었다. 그리고 믿어주는 분들, 응원해 주신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라며 "스노우보드란 내 인생이다.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게 많겠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다짐했다.
끝으로 이상호는 중계 카메라를 보고 메달을 들어 올리며 가족들을 향해 "메달 땄다!"라고 포효했다. 또한 그는 팬들에게 "늦은 시간까지 응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감사하다"라고 인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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