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려고 바다 입수한 것 아니다, 반성 많이 하면서…" 한화 5강 실패 공약 이행, 왜 또 주장 중책 맡았나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25.01.08 06: 50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고참 선수 8명은 지난달 11일 오전 태안 서해 앞바다에 모였다. 팀 내 최고참이 된 에이스 류현진(38)을 비롯해 주장 채은성(35), 장시환(38), 이재원(37), 최재훈(36), 안치홍(35), 이태양(35), 장민재(35) 등 8명의 30대 베테랑들이 얇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다 같이 겨울 바다에 입수했다. 차가운 바닷물에 괴성이 절로 나왔다. 
시즌 전 5강 실패 공약을 이행한 순간이었다. 지난해 시즌 개막 앞두고 열린 KBO 미디어데이에 한화 대표 선수로 참석한 채은성은 “5강에 못 들면 고참들이 12월에 태안 앞바다 가서 입수하겠다”는 이색 공약을 했다. “왜 항상 공약은 실패했을 때만 있는 거냐”는 류현진의 제안에 의해 나온 공약으로 반드시 가을야구에 나가겠다는 결연한 의지 표현이었다. 
그러나 한화는 시즌 초반 반짝 돌풍을 뒤로한 채 최종 순위 8위로 또 5강에 들지 못했다. 시즌 전 공약도 그렇게 잊혀지는가 싶었지만 한화 고참들은 잊지 않았다. 구단에 따로 이야기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태안에 가서 인증 영상을 남기면서 공약을 지켰다. 류현진이 자신의 SNS를 통해 짧은 영상과 함께 “팬 여러분과의 약속 지키러 겨울 바다 다녀왔습니다. 내년에 제대로 더 잘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한화 채은성. 2024.08.18 / ksl0919@osen.co.kr

류현진, 채은성 등 한화 고참 선수 8명이 지난달 11일 태안 겨울 바다에 입수하며 시즌 전 5강 실패 공약을 이행했다. /류현진 SNS

겨울 바다에 입수한 선배들을 바라보면서 후배들도 많은 자극을 받았다. 김서현은 “선배님들이 진짜로 그렇게 하실 줄 몰랐다. 후배로서 가볍게 보기만 하고 넘어갈 건 아니다. 무조건 실력이 늘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문현빈도 “선배님들께서 꼭 가을야구에 나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신 것이다. 후배들도 그런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채은성은 “(미디어데이에서) 모든 분들이 보는 곳에서 이야기를 한 건데 지켜야 했다. 우리가 잘해서 한 공약이 아니다. 웃기려고 한 것도 아니고, 반성을 많이 하면서 내년(2025년)에 잘하자는 마음으로 바다에 들어갔다. 그날도 고참들끼리 ‘잘 준비해서 내년에는 꼭 좋은 성적을 내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돌아보며 “후배들한테도 좋은 메시지가 됐다면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런 남다른 책임감으로 김경문 한화 감독의 신임을 받는 채은성은 올해도 주장 중책을 맡는다.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일찌감치 김경문 감독이 채은성을 따로 불러 주장을 부탁했다. 지난해 주장을 맡으면서 개인적으로도 기복 심한 시즌을 보낸 채은성이라 올해는 다른 이에게 완장을 넘기지 않을까 싶었지만 김경문 감독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다. 2년 연속 주장으로 시즌을 맞이한다. 
채은성은 “주장이 쉬운 자리는 아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제 것 하기도 쉽지 않다. 1년간 해보니까 좋은 경험도 됐지만 진짜 힘든 자리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힘든 걸 넘겨주기도 그랬다”며 “주장을 하면서 이것저것 챙겨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야구를 잘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야구를 잘해야 주장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더 힘이 실린다. 
한화 채은성. 2024.07.28 / jpnews@osen.co.kr
한화 채은성. 2024.09.29 / soul1014@osen.co.kr
한화 채은성. 2024.08.17 / ksl0919@osen.co.kr
채은성은 지난해 124경기 타율 2할7푼1리(436타수 118안타) 20홈런 83타점 OPS .814를 기록했다. FA 이적 첫 해였던 2023년(타율 .263 23홈런 84타점 OPS .779)보다 기록상으로는 조금 더 좋았다. 그러나 타고투저 시즌이었음을 감안하면 전체적인 타격 생산력은 소폭 하락했고, 시즌 초반 손가락과 허리 통증으로 두 차례 부상자 명단에 오르는 악재 속에 전반기에 부진했던 게 아쉬웠다. 
후반기에 특유의 몰아치기로 성적을 대폭 끌어올렸지만 전반기에 처졌던 팀 성적까진 만회하지 못했다. 시즌 후에는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에도 참가해 어린 후배들과 함께 땀을 흘린 채은성은 “오랜만에 마무리캠프에 가서 어릴 때 마음가짐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감독님께서 좋은 말씀들을 해주셨고, 팀으로 봐서도 부족한 것을 많이 채우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그는 “작년에는 팀도, 개인적으로도 많이 아쉬웠던 시즌이었다. 어떻게든 잘하는 수밖에 없다. 감독님도 나이를 먹을수록 조금씩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거에 맞게 조금씩 변화를 가져갈 것이다”며 “올해는 팀 성적도 나고, 모든 선수들이 부상 없이 건강하게 야구를 잘했으면 좋겠다. 감독님이 마무리캠프 때도 말씀하셨는데 새로운 구장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시즌이다. 우리 한화팬분들 모셔놓고 가을 잔치를 하고 싶다는 감독님의 말씀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대전 신구장에서의 가을야구를 꿈꿨다.
한화 채은성(왼쪽)이 김경문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06.06 / jpnews@osen.co.kr
한화 채은성. 2024.09.27 / soul1014@osen.co.kr
/waw@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