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샷' 13번을 버틴 타자를 위한 깃발 ‘맹견주의’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5.01.05 08: 20

[OSEN=백종인 객원기자] KBO가 헤드샷 규정을 도입한 것은 2014년이다. 타자의 머리를 맞히는 투구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직구일 경우, 고의성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투수를 퇴장 조치한다. 변화구나, 위협이 될 경우 경고할 수 있다.
일본(NPB)은 조금 일찍 시행했다. 1994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포수 무라타 신이치가 야쿠르트 스왈로즈 전에서 얼굴을 크게 다쳤다. 이후 ‘직구(fastball) 계열’의 빠른 볼이 머리로 향하면 퇴장시킨다는 규정이 생겼다.
가장 많이 헤드샷을 맞은 타자는 아오키 노리치카(42)다. 그는 일본(야쿠르트)에서 15년, ML에서 6년을 뛰었다. 21년 간 머리 쪽에 맞은 것이 6차례나 된다. 이 부문 최다라는 달갑지 않은 기록의 주인공이다. 후유증으로 뇌진탕 증세를 겪기도 했다.

박병호가 KT에서 뛰던 2022년 한화 전에서 김민우의 공에 헤드샷을 맞아 헬멧이 벗겨지는 장면. OSEN DB

하지만 아오키도 이 사람 앞에서는 겸손해진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뛰던 이누부시 도시아키(52)라는 인물이다.
그는 주전급도 아니다. 대타 혹은 만년 백업 신세였다. 현역 15년 동안 1군에서 머문 것은 5시즌뿐이다. 모두 합해서 116게임에 나갔다. 타석에 선 것은 206차례가 전부다. 풀타임 주전급이면 한 시즌에 500~600타석을 소화하는 것과 비교된다.
그럼에도 놀라운 기록을 가졌다. 선수생활 동안 무려 13번이나 헤드샷으로 쓰러졌다는 점이다.
물론 1군만 따진 것은 아니다. 2군 경기와 자체 청백전 같은 연습 경기까지 모두 합한 숫자다. 공인되기 어려운 기록이다.
하지만 본인의 주장은 분명하다. 심지어 상대 투수를 유형별로 정확하게 분류한다. 일본 매체 풀카운트와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우투수에게 12번을 맞았고, 좌투수에게는 1개밖에 맞지 않았다.”
2004년 라이온즈 레전드 게임 때 모습. 왼쪽이 투수 시오자키 데쓰야(16번) 오른쪽이 이누부시 도시아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공식 SNS
그는 우타자다. 구분하면 파워 히터 스타일이다. “프로에서만 13번이다. 왜 그렇게 많이 맞았는지 모르겠다. 특히 오른쪽 투수 공에 많이 당했다. 그러다 보니 던지는 순간 자꾸 몸이 도망가게 되더라. 어깨가 먼저 열리니, 좋은 타격을 할 수 없었다.”
반면 좌투수에게는 달랐다. 상대적으로 겁을 덜 먹은 것 같다. “왼손 투수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몸쪽 공에도 ‘확’ 들어갈 수 있었다.” 덕분에 좌투수 전문 대타 요원으로 자리 잡게 됐다. 하긴,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그것 때문에 흔히 말하는 반쪽 선수가 됐다.
다행인 점이 있다. 여러 차례 헤드샷에도 큰 부상은 없었다. 대부분은 툭툭 털고 일어났다. 아니, 그래야 했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그럴 수 없다. 혹시라도 엔트리에서 빠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은 다르다. 머리에 맞으면 일단 교체해 준다. 즉시 병원으로 옮겨 정밀 검진도 받게 한다.
물론 가장 위험한 순간은 있었다. 공교롭게도 유일하게 좌투수에게 맞았던 경우다. 1997년 스프링캠프 때 연습 경기였다. 외국인 투수 브라이언 기븐스에게 직격탄을 허용했다.
“엄청난 소리가 나면서 헬멧이 날아갔다. (헬멧의) 귀 덮개 부분이 완전히 함몰될 정도로 강하게 맞았다. 튕긴 공이 노 바운드로 3루수까지 날아갔다. 어질어질했지만 참아내야 했다.” (이누부시 도시아키)
그래도 공포감은 없었다. 그걸 극복하지 못했으면 진작에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좌투수 전문 아닌가. “프리 배팅 때도 일부러 더 몸쪽 공을 많이 달라고 했다.”
이누부시 도시아키의 야구 카드    이베이 캡처
13번의 헤드샷을 버텨야 했던 이유가 있다. 그가 전하는 에피소드다.
입단 10년이 지날 무렵이다. 그동안 1군 기회는 3타석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3년이 지났다. 그렇게 28살 시즌인 2000년 6월의 어느 날이다. 자정 무렵 집전화가 울린다.
잠결에 수화기를 들었다. 다짜고짜 이런 지시가 떨어진다. “아침 일찍 오사카로 와라.” 목소리는 1군 타격코치(스즈키 하루히코)였다. 전년도까지는 2군 감독이었다. 그의 타격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드디어 그날이 왔구나.” 뛸 듯이 기뻤다.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니, 곧 난감한 상황이라는 걸 깨닫는다. “어쩌지? 가진 돈이 한 푼도 없는데.” 2군 연봉이 480만 엔(현재 환율로 4400만 원)이었다. 도쿄 물가를 감안하면 빠듯한 생활이다.
“당장 가진 돈이 몇 푼 되지 않았다. 편의점 ATM도 없던 시절이다. 새벽에 이동하려면 교통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였다. 아내가 주섬주섬 뭔가를 챙겨준다. 남편도 모르게 모아뒀던 비상금이다. “10만 엔(약 92만 원) 정도로 기억한다. 그걸로 택시 타고 도쿄역으로 가고, 신칸센 표를 끊어 오사카까지 달려갔다.”
아마 부인의 정성이 하늘에 닿은 것 같다. 1군 두 번째 게임에서 7번 지명타자로 출전한다. 그리고 첫 타석에서 2점 홈런을 터트렸다. 자신의 프로 첫 아치였다. (물론 이동 경비는 구단이 사후 정산을 통해 결재해 줬다.)
그날 이후다. 외야 쪽 세이부 응원단에는 깃발 하나가 새로 생겼다. ‘맹견주의(猛犬注意)’라는 문구다. 이누부시(犬伏)라는 그의 이름에서 착안한 팬들의 재치였다.
2005년 33세의 나이로 은퇴한 그는 구단 스태프(불펜 포수)를 거쳐, 현재는 베이스볼 아카데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누부시 도시아키 1군 기록 (1996년, 2000~2004년)
116게임 출전, 190타수 56안타(홈런 4개), 0.295-0.341-0.442(타율-출루율-장타율)
블로그 신바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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