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 “짝사랑 연기 정점 찍어보고 싶어요”[인터뷰]
OSEN 강서정 기자
발행 2013.07.22 10: 14

배우 이상엽은 항상 먼발치에서 한 여자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용기 내서 다가가지도 못하고 제대로 마음 한 번 표현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래도 이상엽이라는 배우는 은근히 여자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흔들며 자신의 영역으로 조용히 끌어들인다.
이상엽은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에서 장희빈을 향한 애틋한 사랑을 보여준 동평군 역을 맡아 애절한 짝사랑을 선보였다.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이하 착한남자)에 이어 세 번째로 짝사랑하는 역할이었다.
이 정도라면 ‘짝사랑 전문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드라마 속 그 흔한 커플들 사이에 합류하지 못한 건 아마도 크고 또렷한 눈으로 한 여자를 아련하게 바라보는 촉촉한 눈빛 때문일 것이리라.

“역사는 동평군을 야욕에 눈멀어서 살았던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그 사람도 사랑에 살다간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러한 면을 자주 보여주려고 했어요. 사람들이 ‘왜 장희빈을 멀리서 보고 그러냐’, ‘가만히 서 있어도 불쌍해 보인다’고 하는데 그런 반응이라면 괜찮았어요. 저는 그냥 본 건데 사람들이 아련한 표정이라고 하고 모니터링을 하고 제가 봐도 그런 것 같아서 만족했죠.”
벌써 세 작품에서 짝사랑했던 터라 또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여자를 사랑하는 역할 제의가 들어오면 부담스러울 만도 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상엽의 대답은 달랐다.
“극 초반에는 여주인공들이 나랑 친한데 시간이 지나서 진짜 상대배우와 친해지는 모습을 보면 질투도 나요. 어쩔 수 없죠. 짝사랑 역할로 정점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웃음)”
이상엽의 대답에서 살짝 느낄 수 있듯이 그에게는 장난스러움과 센스, 유쾌함이 묻어났다. 얼굴에서도 아련함 속에 조금씩 보이는 장난기가 묻어나 촬영장에서 ‘분위기 메이커’일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게 했고 이를 물어보자 예상대로였다.
“동평군이 극 초반 밝은 캐릭터라 ‘현장에서 많이 밝게 있자’라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그러다 보니 왠지 모를 책임감도 들고 스태프나 배우들이 피곤해하고 침울해 있으면 ‘웃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마디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런 말들이 잘 먹혀서 자주 빵빵 터뜨렸죠.(웃음)”
촬영장에서는 분위기 메이커로 활약한 이상엽은 스태프, 배우들과도 가족처럼 편하게 지냈다고. 특히나 촬영지가 지방의 산 속이었기 때문에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 많았다. 그래서 이상엽은 ‘장옥정’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었다. 특히 빠듯한 촬영 스케줄 속에서도 조명 감독의 결혼식 사회자로 나서기까지 하는 등 최고의 사교성을 인증했다.
“산 속에서 찍으니까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제 촬영이 없을 때는 현장에 나가서 구경했어요. 구경꾼과 배우를 왔다 갔다 했죠.(웃음) 옆집 동네 사람처럼 민소매 티셔츠에 반바지 입고 슬리퍼 신고 구경 갔어요. 스태프들과도 아주 친해지고 ‘장옥정’을 통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었어요. 그래서 조명 감독님 결혼식 사회도 봤어요. 촬영 중에 둘 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결혼식에 가서 저는 사회 보고 조명 감독님은 결혼하고 그랬죠. 결혼식 끝남과 동시에 둘 다 촬영장으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이상엽은 김태희, 유아인, 성동일 등 든든한 선배들을 얻었다. 김태희는 현장에서 ‘옥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누나였고 유아인은 생각보다 코드가 잘 맞는 동생이었다.
“첫 대본리딩 때 김태희 누나를 보고 인사했는데 정말 어색하더라고요. 제 옆자리에 앉았는데 아예 보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까 편하게 대해주고 장난도 많이 치고 그랬죠. 처음에는 누나라고 했는데 누나가 옥정이라고 부르라고 해서 촬영장에서 ‘옥정아’라고 했죠.(웃음) 유아인은 정말 우리 나이 또래 중에 제일 연기를 잘하는 것 같아요. 독특해서 친해지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편견이고 오해였어요. 착하고 재미있고 둘이 잘 맞아요. 개인적으로 연락도 자주 하고 그래요.”
이상엽은 이들에게서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배우 간의 소통을 배웠단다. 그간 상대배우 보다는 본인의 대사와 감정에만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상황에 집중해 자연스럽게 대사와 감정을 표현하는 걸 터득했다. 이상엽에게는 ‘장옥정’이 연기적인 면에서 터닝 포인트가 된 셈이다.
“예전에는 내가 일방적으로 연기했다면 이번엔 서로 감정이 오가면서 연기하는 걸 배웠어요. 그간 저는 대사를 공부하려고 했던 게 사실이고 ‘장옥정’ 초반에도 그랬는데 성동일, 유아인과 연기하면서 그게 깨졌어요. 감정 하나로 쭉 가더라고요. 그래도 준비 없이 가는 건 안 될 것 같아서 성경 구절을 암기하듯이 대사를 외워 갔고 상대방이 연기하는 걸 보고 대사하는 걸 배웠죠. ‘강하게 해야지’ 했던 대사도 막상 함께 연기를 해보니 호소가 되고 하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착한남자’ 때도 그걸 느꼈지만 겁이 나서 못했는데 이번에는 ‘에라, 모르겠다’하고 많이 던져봤는데 잘 돼서 기분 좋았어요. 그건 모두 제가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게끔 연기를 받쳐줄 수 있는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무엇보다 이상엽이 지금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연기에 임할 수 있게 된 건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격변의 시기라고 하는 30살을 지났기 때문이다. 올해 31살인 이상엽이 29살이었을 때 출연했던 ‘착한남자’와 31살이었을 때 출연한 ‘장옥정’에서 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던 건 그 시기를 잘 넘겼기 때문이다.
“29살 때는 솔직히 힘들었어요. 연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위치하는 곳이 어딘가라는 생각했을 때 막연하고 애매했고 그게 겁났죠. 그런데 30살 때 ‘청담동 살아요’를 만나서 재미있게 보내 다행히 그 시기를 견뎠고 이제는 슈퍼스타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렸어요. 예전에는 ‘이 작품을 하면 잘 될 거야’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인기가 많아지기보다는 연기로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요.”
이상엽, 그는 아직 짝사랑남 또는 순정남이라는 이미지가 강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러한 역할들 속에서 능청스러움과 진지함 등을 선보이며 다양한 캐릭터로서의 변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방사형으로 넘나들며 역량을 뽐낼 수 있는 캐릭터들로 필모그래피를 꾸려 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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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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